- 흑사병이 변화시킨 세계
흑사병은 수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지옥같은 역병이 수그러들자 상황이 급변했다. 인구가 격감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인력난이 찾아왔다. 높은 임금을 준다고 해도 부족한 일손을 메울 새 노동력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많은 토지가 경작자를 축하지 못해 버려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에 따라 과거 농노의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의 지위가 개선 되었고 더 좋은 여건을 좇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졌다. 흑사병에서 운 좋게 생존한 이들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실감 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역사가들이 '농업노동자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자 영주들은 농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싶어 했다. 함게 머리를 쥐어잔 끝에 그들이 고안해낸 방안은 임금 상승을 제한한고 노동력의 이동을 강제로 막는 것이었다. 영국에서 1351년에 반포된 노동자조례가 바로 이런 방안을 대표하는 조치였다. 자신의 통제력을 되찾으려는 지배층과 이에 저항하는 피지배층 사이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보였다. 프랑스에서는 자크리의 봉기가 발생하였고, 영국에서는 와트 타일러의 봉기가 뒤를 이었다. 스페인, 포르투칼, 독일, 이탈리아, 등 서유럽 각지에서도 봉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봉기에서 처음에는 농민 측이 일시적인 우세를 점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영주 측으로 승리의 축이 기울어졌다. 그결과 영주가 주도하는 지배체제가 일지적으로 강화되었다. 하지만 노동력이 계속 부족한 상황에서 영주들 간이 담합 체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별 영주는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농노였던 사람들의 처우를 점차 개선시켜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유럽의 농노는 서서히 신분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민의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 가공할만한 지진의 파괴력
지진은 다른 자연재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우선 지표가 파열되고 지반이 흔들린다. 그런데 해당 지역에 활층단층이 존재하면 파괴의 수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1906년 미국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은 샌앤드레이어스 단층을 따라 지작판이 수평으로6.5미터 어긋나게 만들었다. 이로인해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고 도로, 건물, 댐, 터널들이 잇다라 파손되었다.
지진에 의해 액상화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규모 5.5이상의 지진이 1만년 이내에 쌓인 퇴적층 지대에서 발생하면 모래층이 모래와 물의 혼합 상태로 변하는 액상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지진파가 지나갈 때 발생하는 진동이 수압을 높이는데, 이것이 모래층을 수프처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에서 일어난 수차례의 지진에서 아파트 건물 전체가 미끄러지듯이 넘어지는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지진이 유발하는 또 하난의 재해는 산사태이다. 지진에 의해 발생하는 산사태가 마을이나 도로를 덮치기도 하고, 강을 막아 이른바 '지진호수'를 형성한 후 이것이 나중에 범람해 홍수를 일으키기도 한다. 지진은 또한 화재를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인구가 밀집한 도시의 경우 가스관과 전력선이 파괴되고 난방장치가 망가지면서 화재를 일으키기 쉽다. 지진이 나면 교통이 차단되고 소방시설이 피래를 입기 때문에 이런 화재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진에 의한 화재는 피해가 각별히 큰 경우가 많다. 1906년 샌프란시크고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전체 피해의 80퍼센트가 화재로 인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지진은 가옥과 위생 설비에 타격을 주고 상하수도를 파괴해 물을 오염시킨다. 이에 다라 대피하기 어려운 고립된 상황에 처한 주민들 사이에서 질병이 퍼지기 쉽다.
계몽주의라는 사상과 지진이라는 자연재난이 만난 역사적 접점 지역이 1755년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이었다.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반종교개혁의 기치를 놓이 들고 전투적인 태도를 취한 예수회가 이우 이베리아반도의 종교화 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올랐다. 예수회가힘을 지닌 사회에서는 세상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전통적 해석 안에서 이해하려는 목소리가 더 컸다.. 1609년에는 모리스코, 즉 이슬람교도였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들을 박해하여 해외로 추방시켰다. 무려 30만명에 달하는 모리스코가 추방됨에 따라 이들이 영위하던 농업과 상업에 막대한 타격이 발생했다.
-산업혁명을 불러온 탄광의 증가
방대한 양의 석탄 채국은 국가의 경제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영국은 전통 연료였던 목탄에 비해 석탄의 가격이 상재적으로 낮은 상황이었다. 반면에 노동자의 임금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석탄은 저렴하고 인건비는 비산 상황은 사람들에게 노동을 덜 쓰고 석탄을 더 사용하는 방향으로 기술 개발을 추진하게 만들었다.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쓰는 기계야말로 영궁에 가장 적합한 기술의 방향이었다.
오늘날 경제사학자들은 영국이 당시에 이룬 기술진보가 발명가 개인의 업적이라고 보는데 다소 거부감을 보인다. 개인의 뛰어난 창의성과 노력이 발명을 이끌어 낸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왜 당시에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뛰어난 발명품이 등장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인도처럼 노동력이 품부한 나라에서 노동력을 절감하는 기계가 발명되었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새로은 기계를 사용해서 얻게 되는 비용 절감 효과가 크지 않았을 테니 공장주들이 굳이 새 기계를 도입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영국에서 석탄이 노동에 비해 상태적으로 저렴하지 않았더라면 기술 진보가 그렇게 빠르게 일어나지 못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석탄은 영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는 지위를 갖게 만든 일등 공신이었던 셈이다.
-철도 사고를 막기위한 노력
노동조합의 성장도 재난과 안전 조치를 둘러싼 역학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철도 노동자들은 1870년대부터 대규모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노동 여건 개선의 일환으로 안전시설을 확충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재해 발생 시 노동조합의 보호와 지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피해보상을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보상의 책임과 범위에 대한 법적 분쟁이 발생하면 노동자는 조합에서 재정적 지원과 법적 조언도 얻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고용주는 과거보다 낮으은 승소 확률과 높은 보상 비용에 직면했으며, 그에 다라 기존의 태도를 버리고 산업재해 방지에 더 전향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산업재재보상보험과 같은 새로운 제도가 등장해 노동자들에게 부가적인 안전망을 제공해 주었다.
'책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획의 정석 (0) | 2023.12.30 |
---|---|
초생산성 (0) | 2023.03.26 |
위스키 마스터 클래스 (0) | 2023.02.13 |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0) | 2023.02.05 |
한번이라도 끝까지 버텨본 적 있는가 (0) | 2023.01.25 |